트랙백 '자발적인 성노동자'는 성매매를 불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가성노동자의 행위를 신체의 일부를 떼어서 주는 장기매매에다 유비추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다. 성노동자의 노동은 인기탤런트들의 딥키스연기 노동과 별다를 바 없다. 다만 딥키스나 성기노출 혹은 삽입섹스 서비스등 각각 그에 대한 의미를 달리 둘 뿐. 그 의미 구별은 사실상 성기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체의 일부나 혹은 그것으로 형성되는 서비스가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개인의 인신의 구속과 자율성이 지나치게 침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행위가 곧바로 그러한 서비스라고는 말할 수 없다. 따져봐야할 일이다. 아닌 것을 가지고 맞다고 하는 데에는 논리적 비약이 개입돼있다.
시장논리에서 들어가서는 되지 않을 것은 불합리한 서비스의 환경과 조건이다. 성노동을 노예제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말로 노예제에 비교해보자. 노예제에서 노예들의 행위가 비인간적이어서 비판을 받는지? 아니면 노예들의 행위를 둘러싼 조건들이 비인간적이어서 비판을 받는지?
노예들의 행위는 현대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정부의 행위나 소작농의 행위등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다만 계약 조건 내지 노예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가 너무 불합리해서 노예제가 비판받을 뿐. 성노동자도 똑같다. 행위가 아니라 행위조건의 문제를 고찰해야한다.
자발적인 성노동자의 존재는 성매매를 불법으로부터 해방시킬 가능성이 있다. 자발적인 성노동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조건만으로 성매매를 불화하거나 합법화할 수 있는 결론까지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자발적인 성노동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매매합법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성매매합법화 불법화의 문제의 사유는 '행위의 대가성' 이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서 시작한다. 서구사회, 그중에서도 선진 서구사회가 성매매불법화에서 합법화로 바뀌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고 싶다면 뇌물과 성매매를 나타내는 단어가 같은 단어였다는 사실부터 사유를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대가성' 이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은 '부패학'이 다루는 내용이다. 행위조건 뿐만 아니라 행위그 자체도 고찰해야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은 부패학에서 다루는 '대가성'의 의미와 그 역사에 대해 천착해보시길 바란다.
왜 인류의 역사는 뇌물의 대가성 문제는 점점 엄격히 따지고 있는데 반해 섹스의 대가성 문제는 점점 제껴놓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